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자크는 두나이를 넘었다 (문단 편집) == 설명 == 참고로 '카자크는 두나이를 넘었다'라는 원제보다 그냥 코사크의 노래라든지 코사크 송으로도 불린다. 애초에 이건 코사크를 소재로 한 많은 노래에 거의 다 붙는 별칭이지만. 또는 카자크는 도나우를 넘었다라는 제목으로도 불리기도 한다. 역사적배경을 설명하자면 [[18세기]] 후반, [[오스만 제국]]과 [[크림 칸국]]과의 [[우크라이나]] 평원을 둘러싼 경쟁도 대충 승리로 끝나가는 무렵에서 [[제정 러시아]]는 지금까지 협력하는 대가로 자유롭게 자치권을 보장해 주었던 자포로제 카자크들을 본격적으로 총 기지인 시흐를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유를 박탈해가기 시작했다. 이 중 많은 카자크들은 지금까지 형식적으로나마 주군으로 모셔가며 협력해 왔던 제정 정부에게 대놓고 반항할 수도 없으니 최근까지만해도 최대 적국으로 열렬히 싸웠던 [[오스만 제국]], 현재의 [[루마니아]] 땅으로 도망쳤다. 이들의 여정을 두고 코사크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를 가로지르는 두나이(다뉴브)강을 건넜다고 하는 것. 이들 중 상당수는 훗날 제정 러시아가 다시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일 때 짜르가 내린 특사로 "주님도 너희들을 용서하고, 모국도 너희들을 용서하며, 나도 너희들을 용서한다"라는 사면령을 내리자 그제서야 러시아로 돌아갔으나, 다른 이들은 계속 오스만 제국에 남아 오히려 [[술탄]]을 위해 종군하기도 하며 [[아나톨리아]], [[그리스]] 등으로 자취를 옮겨 동화되었다. 여담으로 이 곡에 나오는 '두나이강'은, 우크라이나(혹은 [[동슬라브]]) 관용어로 정말 두나이강([[다뉴브강]])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넌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. 카자크 전사라는 곡의 화자와 연결시킨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하러 나간다는 말이 되겠다. 이 점에서는 [[다뉴브강]](또는 두나이강, 도나우강) 자체가 오랜 역사동안 일종의 '문명권의 경계'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. 중세 초기 [[동유럽]] 전역에 슬라브인이 정착하였고, 이 중 동부(현재의 [[유럽 러시아]]+[[우크라이나]]+[[벨라루스]] 정도)에 정착한 동슬라브인이 [[루스]]인으로 정체화하였으며[* 루스인의 기원이 동슬라브인과 북게르만인(노르드인)의 융합으로 탄생했다는 설도 있고 이에 대해서는 [[루스]] 문서에 설명되어 있으나 이는 본 주제에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. 다뉴브강이 문명권(문화권)의 경계라는 것은 곧 슬라브인의 거주 권역에서 [[동슬라브]]와 [[남슬라브]]의 권역을 나누는 경계라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. 여기서 동슬라브인은 노르드인의 영향을 받아 루스->대러시아에 이르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발칸에 정착한 남슬라브인은 동로마제국, 헝가리, 오스만제국등의 영향을 번갈아 받으며 그와는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이는 '단'을 붙여 반론할만한 내용이 아니라 그저 그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부연설명일 뿐이다.] 루스인이 정착한 땅이 오늘날 [[동슬라브]] 문명의 모태가 된 것. 그리고 다뉴브 강은 대러시아의 남쪽 경계선에 해당한다.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뉴브강 하류 이북의 [[몰다비아]]나 [[왈라키아]] 지방은 루스인의 영역이라고 보기 어렵기는 하지만... 이 지역은 오랜 기간동안 독립적인 문명권과 세력을 이루기보다는 주변의 강한 세력에 복속되는 완충지대나 변방의 경계지역 역할을 해 왔던 것. 이에 비해 다뉴브강을 건너가면 [[러시아]]의 오랜 숙적이던 [[오스만 제국]]의 핵심 영토인 [[발칸 반도]]이다. 러시아에 기병 전력으로 기용된 카자크인들이 다뉴브강(두나이강)을 건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러 간다는 의미이거나, 지금까지 속해있던 나라를 버리고 적국으로 투항한다는 의미였기에 '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'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.[* 오스만 제국이 흥기한 근세 이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. 다뉴브 강 이남의 발칸 반도는 중세 유럽의 패권국 중 하나였던 [[동로마 제국]]의 영토이거나 그 동로마를 여러 차례 위기에 몰아넣은 [[불가리아 제국]]의 영토였다. 이 시기는 아직 통일된 러시아 제국이 탄생하기 이전이긴 하지만... 어쨌건 다뉴브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용병으로 돈 벌러 가든지 부유한 [[발칸 반도]]를 약탈하러 가든지 여하간 목숨과 인생을 걸 각오를 하지 않으면 넘어가기 힘든 일종의 '경계선'이었던 것.] 이 노래는 세멘 클리모우스키가 채록한 이후로도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병사들 사이에게서도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. [[나폴레옹]]의 [[러시아 원정]] 당시 카자크 병사들에게 많이 불려졌다고 전해진다. 러시아 원정 이후 러시아군이 [[나폴레옹]]을 역관광시키는 과정에서 이 멜로디가 유럽 전역에 퍼져서 나름 인지도 있는 곡이 되었다. [[폴란드]]에서도 이 곡을 [[폴란드어]]로 바꾸어 불렀고, 특히 [[독일]] 같은 경우에는 민카(Minka)라는 주제로 많은 작곡가들이 우려먹었다. 가장 유명한 이로는 [[베토벤]] 선생이 있으시겠다. [[미국]]으로도 건너가 [[1930년대]] Yes My Darling Daugther이라는 곡으로도 둔갑했다. 참고로 Ти ж мене підманула라는 여자에게 1주일 내내 바람맞은 남자의 비애가 흥겹게 담겨져 있는 가사를 가진 노래와 멜로디가 흡사한데, 이쪽은 주로 결혼식때 자주 불리는 편. [[영어 위키피디아]] 페이지에는 이 노래로 [[http://en.wikipedia.org/wiki/Pidmanula_Pidvela|항목]]까지 만들어져 있다. 우크라이나 민요인지라 세계적으로는 [[검은 눈동자]]나 [[칼린카]]급으로 인기가 있지는 않기는 하다만 선율은 꽤 괜찮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